우리가 조지아를 선택한 이유, 바로 트레킹이다. 2년 전 나홀로 네팔 안나푸르나 ABC 트레킹을 했었다. 그때 본 웅장한 설산의 모습을 림킴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다. 비록 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설산을 본 경험이 없는 림킴에게는 작지 않은 감동을 줄 거라 생각되었다. 



10월 중순 메스티아의 아침은 쌀쌀했다. 우리는 준비한 옷을 잔뜩 껴 입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같은 숙소에 묵었던 한인 여행객들의 응원이 힘이 되었다. 트레킹 길목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없어서 다소 불편했지만 메스티아 마을을 벗어나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목을 찾았다. 



우리가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가장 만만의 준비를 한 것이 바로 오프라인 지도였다. 스마트폰 GPS 기능을 이용해 인터넷이 되지 않는 지역에서도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보니 조지아 트레킹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정리한 외국 사이트가 있어 링크를 걸어 둔다. 이 사이트는 외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뿐 아니라 앞서 말한 GPS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조지아 트레킹 정보(코카서스 트레킹)

 



등산로 초입에 접어 들면서 개 한마리가 따라 붙는다. 꽤 덩치가 있어 다소 겁이 났지만 기분좋게 흔드는 꼬리에 마음이 가라 앉았다. 한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라 다니다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동행한 개가 있어 든든하고 이내 정이 들었는데 없으니 금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한참을 배낭을 매고 걸으니 더웠다. 아침에 추워서 껴 입었던 옷들을 다시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우리의 위치를 살폈다. 우리가 시작한 길은 숲속길이라 등산로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자칫 등산로가 아닌 것 같은 길도 지나가야 했다. 때문에 GPS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그래도 울창한 살림에 들어와 걸어 본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가을이 완연한 메스티아-우쉬굴리 트레킹 코스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매력을 뽑냈다. 




우리는 한참을 숲길과 도로를 번갈아 가며 걸었다. 그리고 비포장 도로를 걷게 되었다. 확실히 산속 길 보다는 걷기가 편했다. 길이 명확히 나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매번 GPS로 위치를 확인 하지 않아도 되었고 비교적 이정표도 잘 되어 있었다. 반면 차가 한번 지나가면 매연과 먼지가 우리를 괴롭혔다. 




림킴은 생각보다 잘 걸었다. 배낭 무게가 있는데도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나는 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건 아니였지만 활력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괜히 티를 내서 림킴에게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비포장 도로를 한참을 걷다보니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넓은 마당이 있는 오두막 집이 보였다. 넓은 마당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고 한쪽에는 동물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날씨도 화창해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림킴과 나는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살자"고 약속했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 그때의 약속은 잊혀지고 한강변이 보이는 아파트로 자연스레 바뀌게 되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 오두막집을 생각하니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다. 




오후 12시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챙겨온 점심을 먹었다. 이곳은 트레킹 중간에 점심을 사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 네팔 트리킹 코스 처럼 곳곳에 숙소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당일 목적지까지 이동해서 식사를 하거나 챙겨온 식량으로 식사를 대신해야 한다. 우리는 메스티아에서 빵과 꿀 그리고 과일, 견과류 아침에 먹을 계획으로 컵라면을 챙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꿀팁은 트레킹 코스 중 만나게 되는 거의 모든 숙소는 숙박비에 식사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을 어디를 나가도 레스토랑이 없다. 즉, 숙소에서 만든 가정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저녁, 아침이 포함된다. 트레킹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을 먹고 떠나는 방식이다. 

지역마다 금액이 다른데 보통 산속으로 들어 갈수록 비용이 올라간다. 비용은 협의하기 나름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부터 코스가 급격히 힘들어 졌다. 고도를 높여가야 했기 때문이다. 림킴과 나는 점점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숨도 막히고 우리가 준비한 물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최대한 물을 아껴가며 정신을 집중해 걷기 시작했다. 오늘 어떻게 해서든 Tsvirmi까지 가야 쉴수 있었다. 




오후 4시, 메스티아를 출발한 지 8시간 만에 Tsvirmi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우리가 걸음이 느린 편이라 오래 걸린 것 같다. 힘이 들어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이는 숙소에 묵었는데 림킴의 협상력 덕분에 좋은 조건에 묵을 수 있었다. 숙소는 4식구가 지내고 있었다. 부부는 농사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4살 딸, 2살 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낯선 우리를 경계하며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가 다가가면 겁을 먹고 엄마 바지 가랑이를 붙잡기도 하다가 우리가 무관심하게 앉아 있으면 문 옆으로 와 우리를 힐끔 처다 보았다. 외국 아기들은 어찌나 인형 같던지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숙소의 저녁은 우리에게 환상적이였다. 현지 가정식으로 차려진 식단은 특별함이 없었지만 소박하고 정갈했다. 특히 빵에 겉들어 먹는 이곳 전통 치즈 수구니는 떨어진 체력을 보충하기에 충분했다. 배불리 식사를 하고 농사일을 하러 나간 가족을 위해 우리는 빈 접시를 손수 설거지했다. 그리고 온갖 동물들이 노니는 마당으로 나가 일광욕을 즐기며 쉬었다. 절로 힐링이 되었다. 

걷는 건 언제나 힘이 든다. 하지만 그 고생을 이겨내고 누리는 특별하지 않은 휴식은 모순되게 특별했다. 이렇게 조지아 트레킹 1일차가 마루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