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이 나가 두 번을 찍었는데, 그냥 초점 나간 사진이 마음에 든다. 가끔 내 눈도 초점이 나가 멍하게 사물을 쳐다 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마음이 고요하니 편하더라. 



여행 이틀 째, 비가 퍼부었다. 덕분에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을 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서는 세차게 부서지는 파도를 하염없이 바라 보며 맥주를 마셨다(나는 운전을 안 하므로). 오키나와 여행에서 꼽는 기억의 남는 순간 중 하나다. 



g가 준 시그마라는 디지털카메라는 여간 찍기가 힘든 게 아니다. 일단 셔터 속도가 느리다. 그리고 화면에 보이는 것과 높낮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내가 담고자 했던 것과는 꼭 다른 것이 담겨있다. 아. 이건 뭐 내가 못 찍어서 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래서 여러 번 다시 찍다 보면 또 배터리가 나가고 없다. 하지만 금세 이유 없이 시그마가 좋아져 버렸다. 이래서 정이 무섭다고들 하는 건가 보다. 



수산물 직판장에서 일하는 직원은 오더가 들어오면, 주문서를 색색의 자석 아래 놓아둔다. 우리는 3번이었다. 모듬 회를 800엔에 주고 샀는데, 한 접시 가득 나왔다. 그 중 최고는 이라부치(파랑비늘돔)였다.  



역시나 자판기의 나라. 오키나와도 어김없었다.



바닷가 마을은 뭔가 달랐다. 거침의 매력이 있었다. 간판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 매력을 배가 시켰다. 간판보다 흔한 것은 페인트로 적어 둔 상호명과 전화번호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바람에 색이 다 바래어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 플리마켓을 발견하곤 곤바로 차를 세웠다. 그곳에서 우리는 운이 좋게도 예쁜 전등을 200엔에, 롱 치마를 100엔에 그리고 유리 호리병을 10엔에 샀다. 



리마켓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는 간지가 넘쳤다. 요즘 말로는 스웩이고, 우리나라 말로는 멋.



바다의 가능성은 무한대. 나의 가능성은 유한대. 그러니 인간은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거다. 양육강식이 따로 없다.



우리가 평소에 잘하는 게 있다면 단연 싸움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얼마나 싸울지 걱정이 됐다. 5박 6일 동안의 여정 동안 단 2번! 크고 작게 싸웠다. 이 엄청난 선방은 만천하에 자랑할 만하다. 



건너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이 흔들린 사진을 찍겠다고 버팅겼다. 빨간불로 바뀌면 또 기다려서라도 다시금 잘 찍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따라 건넜다. 그러자 또 다른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서행하시오, 멈추시오, 진입금지, 공사중을 이라고 적혀 있겠거니 했다. 이 간판들을 발견한 것 또한 재미있었다.



여행 내내 진입하지 못하는 것도 멈춰야 할 것도 없어서 좋았다. 감정적으로 그랬다. 덕분에 g랑 계급장 떼고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시나 차 렌트는 옳은 선택이었다.